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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젊은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방금 한 가장의 장례식에 다녀와서 질문을 드립니다. 지금까지는 저의 수십 년간의 신앙의 상식으로는 삶과 죽음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라는 관점에서 한 번도 이탈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40대의 건장한 젊은 성도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하나님께서 과연 이 젊은 성도의 죽음에 관여를 하셨을까?” 하는(눈을 치우는 작업을 하다가 뇌졸증으로 사망하심)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즉, “이 젊은이의 죽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이분을 죽게 하셨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저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요?


답변 

아무리 의롭게 사는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의 삶 속에 고통과 죽음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노화 현상 때문에 질병에 걸리거나 죽게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각 개인에게 오는 고통과 죽음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할 때 우리는 모든 경우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최선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허락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장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여 하늘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에게도 고통과 죽음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는 경우보다,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생각하면서 신뢰할 때에 믿음의 힘이 발휘됩니다. 이제 질문하신 문제에 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을 범한 결과 때문에 고통이 온다

일반적으로 고통, 질병 그리고 죽음은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이나 자연법칙들을 범하는 결과로서 온다. 고통이나 질병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인간 스스로가 그들의 고통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다. 노아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 그리고 바로의 군사들이 홍해에서 수장 당한 사건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관여하실 때에는 분명한 목적과 공의하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넘칠 때, 멸망이 이르러 온 경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며 대개의 경우 고통의 원인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다.

그러므로 고통과 질병과 죽음이 발생하면 먼저 그 사람이 율법과 자연 법칙 중에서 어떤 것을 범했는지를 신중하게 살핀 다음에 잘못된 것들을 회개하거나 개혁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건전한 상식이자 올바른 신앙 자세이다. 여기서 자연 법칙이란 생명의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서, 복종하면 살고, 범하면 죽게 되는 철칙을 의미한다.

율법이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도덕률을 말하며, 자연 법칙이란 물고기가 물에서 살면 살고, 물 밖으로 뛰어 나오면 죽는 것과 같은 법칙을 말한다. 고압선을 만지면 죽는다는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고의적으로 전깃줄을 만져서 죽었을 경우에, 우리는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려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독버섯을 먹는다면, 그는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의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법칙은 우리가 그것을 무시할 경우에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법칙을 지키면, 그것은 우리를 지켜주는 충실한 종이 되지만, 그것을 어겼을 경우에는 무서운 주인이 된다.

자연 법칙을 어겼다고 해서 항상 즉각적인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몇 년 후에 그 결과를 받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전혀 그 결과가 없이 사라지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우리가 그것을 어긴 결과를 느끼든지 느끼지 못하든지 간에 그것은 항상 결과를 남긴다. 그러므로 자연 법칙은 그것을 어겼을 경우, 그 결과가 지연될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20대에 무엇을 뿌렸다면, 40대 혹은 50대에 가서는 그 결실을 거두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뿌려 놓고서, 그 결과가 생기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헛된 것이다. 세상이 존재하는 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워 놓으신 자연 법칙 또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스트레스를 계속해서 받는 삶을 살면서 고단백질과 고지방의 식사를 계속해서 했다면 그 사람은 뇌출혈로 쓰러지거나 죽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발생된 비극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준수해야 할 법칙들을 기록해 두셨다. 그래서 성경은 어떻게 먹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칙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 법칙을 범하는 삶을 살면 결국에는 건강이 무너져서 고통스런 삶을 살거나 갑작스런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선한 사람일지라도 건강에 대한 성경의 법칙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긴다면 그 사람은 결국 건강을 해치게 되고 신체의 조직에  문제가 생겨서 심각한 질병이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의 율법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도 결코 변경되거나 폐하여질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봉사를 가리키면서, 이제는 율법이 폐하여졌으므로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지금도 선언하고 계신다(마 5:17,18). 자연 법칙을 범하였을 경우에 고통을 당하거나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율법을 범하였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데, 성경은 그 대가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율법을 범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결국에는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지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그 결과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다섯째 계명을 범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용서의 정신이 사라지게 된다. 미움과 원통함이 온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 그 결과,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에 무리가 가며, 갑상선에 이상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오랜 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서, 결국에는 각종 질병과 고통이 그대를 찾아오게 된다.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한동안 아무런 형벌이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고, 시집 장가간 다음, 그 결과로 인하여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까지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아무런 징조도 없이 120년을 지낸 후에 갑자기 홍수가 이르러 왔던 것처럼, 쾌락과 자기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 현재는 어떤 특별한 징계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죄악의 잔이 차는 순간, 그들은 스스로 헤어나오기 어려운 고통과 고뇌의 경험을 갖게 된다.

비록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율법과 자연 법칙에 불순종할 때에는 그에 해당하는 결과를 받게 된다. 예를 들면, 열심히 일하는 자만이 수확을 거두게 된다는 것은 자연 법칙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서, 좋은 열매와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도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유전법칙에 의거하여 병약한 유전인자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다. 그들도 사고를 당하고, 불신자들이 걸리는 똑같은 질병에 들어 죽게 된다. 그렇다면, 육체적인 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통과 불신자들이 당하는 고통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 질문은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동일한 자연 법칙을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고통과 불신자의 고통 사이에 눈에 보이는 어떤 차이가 있다면, 각자가 어떤 반응과 태도를 나타내는가에 있지, 결코 하나님께서 그들 각자에게 적용시키는 자연 법칙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의 생애에 다가오는 재난과 고통으로부터 면제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사건들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사람에 따라서 크게 다를 수 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복종함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일에서도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을 통하여 고난 속에서도 안정된 마음으로 고난의 끝을 기다릴 수 있으며, 그러한 깊은 영적 체험을 통하여 더욱 더 고결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편애를 받는다거나 자연 법칙에 따라서 받게 되는 고통을 경감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자연 법칙을 적용시키지만, 하나님을 신실하게 신뢰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영적인 원칙을 적용시키고 계신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당신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인 법칙에 따라서 그들의 마음에 용기를 주고 견딜 수 있는 힘을 공급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져 있지만, 그분의 치유하시는 능력은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오기로 선택하는 사람에게만 조건적으로 제공된다.

그러므로 고통이나 질병을 가지고 있는가? 먼저, 그대의 양심과 생활 가운데서 어떤 법칙이 범하여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그대의 죄와 잘못을 지적해 주실 때, 즉시로 회개하고 잘못된 것들을 개혁하라. 그리고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맡겨라. 바로 이것이 그대가 어두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