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2

제2부_ 첫 번째 엘리야가 왔을 때

 

선지자 엘리야의 시대 이후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일생의 사업에 대한 기록은 하나님을 따르며 의를 위하여 홀로 서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감명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생애의 기록은 특별히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1) 하나님이 찾아낸 사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필요하셨다. 불신과 반역으로 얼룩진 배도의 시대에 백성들을 깨우고 경고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일꾼이 필요하셨다. 아합의 시대에 요단강 동편 길르앗 산중에 사는 신앙과 기도의 사람이 그 일을 위해 택함을 입었는데,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였다. 산중 은신처에서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들어가는 이스라엘을 바라볼 때에 그의 마음은 고통스러웠고 의분이 일어났다. 당시의 사람들은 아합 왕의 영향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거의 잊어버리고 축복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 대신 바알을 모든 것을 공급해 주는 신으로 믿고 섬기고 있었다. 이방 나라의 악습을 그대로 모방하며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으로 눈이 멀고 현세의 이익과 육욕에만 빠져,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민의 임무는 물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목적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엘리야는 한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던 백성이 완전히 멸망 받게 되기 전에 회개하기를 갈망하였다. 그는 백성의 악한 행위를 돌이킬 수만 있다면, 필요하다면 형벌이라도 내리셔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였다. 엘리야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 엘리야는 비록 그 명령을 순종할 때에 생명이 위태하게 될 것을 알았지만, 그 부르심에 순종하기를 지체하지 않았다. 그의 담대함과 하나님을 위한 열심과 영혼을 위한 열정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이 시대에도 엘리야와 같은 정신과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죄악의 조류에 휩쓸려 가고, 주위의 친구와 친지들이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류의 길로 갈 때라도, 엘리야처럼 홀로 굳게 서서 의와 진리의 길을 가며, 죄악의 물결에 휩쓸려가는 영혼들에 대한 부담과 오류에 물들고 표류하는 기독교를 위한 부담을 가지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담대하게 참된 복음과 진리를 가지고 영혼들에게 경고하며 가까이 다가온 심판과 예수님의 재림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엘리야가 자신의 생명을 아까워하거나 인간의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합 왕 앞에 나타나 곧바른 진리를 전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 진리를 외쳐야 할 사람들은 왕과 같은 높은 지위와 권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별을 전할 것이다.  

2) 엘리야의 접전과 아마겟돈 전쟁

엘리야가 치렀던 갈멜산에서의 그 유명한 접전은 표상적인 의미에서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선과 악의 대 쟁투 “아마겟돈의 전쟁”(계 16:16)과 깊은 연관이 있다. 마지막 때에 사탄과 연합한 세 세력이 하나님의 참 백성과 접전하기 위하여,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아마겟돈에 모이게 된다. 성경은 그곳을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아마겟돈”의 헬라어는 “할 므깃도 (Har-megiddon)”로서 이것은 “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이 있다. “므깃도”는 바로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과 접전을 했던 “갈멜산” 아랫부분에 있는 평야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아마겟돈”, 헬라어 “할 므깃도”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갈멜산”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에서 마지막 전쟁이 일어난다고 묘사했을까? 그것은 갈멜산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 신의 거짓 선지자들 사이에 있었던 투쟁과 같이, 마지막 때에 선과 악의 영적인 대결이 그렇게 펼쳐질 것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로 기록한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갈멜산에서의 대결처럼, 선과 악의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정점을 이룰 것이다. 그 날에 서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흰옷을 빨리 준비해야 한다. 엘리야의 시대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과 거짓 신들을 예배하는 자들 사이에 경계선이 분명하게 그어져 있다. 우리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2, 4, 5)고 외쳐야 한다. 모든 영혼에게 시험이 닥쳐올 시간은 머지않았다. 사람들은 거짓 계명을 준수하도록 강요당할 것이며,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계명 사이에 투쟁이 있을 것이다. 차츰차츰 세상의 요구에 굴복하고 세상의 습관에 동화하는 사람들은 조롱과 모욕과 투옥의 위협과 죽임을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세력에 복종할 것이다. 그때에는 금이 찌끼에서 분리될 것이며, 참 경건은 겉치레만의 경건과 분명히 구별될 것이다. 엘리야와 같이 마지막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의의 증인과 일꾼이 되도록 하자!

3) 엘리야의 개혁 사업

우리는 엘리야의 생애를 통해 나타난 그의 정신과 신앙의 개혁 사업을 본받아야 한다. 엘리야는 개혁 사업에 전 생애를 바쳤다. 그는 백성의 죄를 견책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종이었다. 악한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을 때에 엘리야는 아합의 운명과 그의 집 모든 사람의 운명을 예언하며 견책하였고, 아하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합이 죽은 후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로 향했을 때에도 맹렬히 그 죄를 견책하였다. 두려움 없이 죄를 죄라고 부르며 견책하고 거기서 돌이키고 개혁하기를 촉구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엘리야의 사명이 맡겨져 있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는 말라기의 말씀의 의미는 엘리야의 개혁과 교육 사업을 상고해 보면 확실해진다. 엘리야는 오랫동안 숙원하던 교육과 가정의 영적 회복 사업에 착수했다. 이스라엘은 일찍이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가져 하나님의 율법을 잘 가르쳤었다. 그러나 오래전에 사무엘 선지자가 설립한 선지자 학교들은 이스라엘의 배도의 기간에 낡고 허물어져 있었다. 엘리야는 청년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높이고 존중하는 참교육을 받도록 이 학교들을 다시 설립하였다. 이들 중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 있던 세 학교는 기록에 나오는 유명한 학교이다.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기 바로 전에도 그는 후계자 엘리사와 이 훈련소들을 방문하며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었다.

사회가 개혁되려면 먼저 가정이 변화되어야 한다. 변화되고 잘 훈련된 가정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설교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가정교육은 필생의 사업이다. 자녀들이 가정에서 받은 교육과 모본은 평생 영향을 끼쳐 그들이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충성하게 한다. 훌륭한 그리스도인 교육을 입증하는 가장 효과적인 증거는 가정의 감화로 말미암아 형성된 좋은 품성이다. 신앙의 개혁은 가정의 전반적인 모든 일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가족들의 재연합과 재단결과 돌이킴과 회복을 호소하신다. 친절과 온유와 예절과 사랑의 관계가 가족 간에 형성되어야 하며,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모본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성품을 하늘나라에 적합한 성품으로 꼴 지어야 한다. 온 가족이 신앙 안에서 진정으로 거듭나고 영적으로 한마음과 한 목적으로 연합할 때에, 그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위대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엘리야의 외침은 잃어버린 자녀를 구원하고, 신앙과 영성을 잃어버린 부모들을 한데 모으는 복음이다. 가족 간의 불화와 증오를 사라지게 하고 용서와 화합으로 모으는 사랑과 회개의 복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주신 사명을 완수했던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셨다. 엘리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지상에 살아 있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성도들을 예표한다.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의 끝이 가까웠을 때에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모세와 같이 구주의 곁에 서 있었던 것은, 그가 마지막에 변화함을 받을 사람들의 표본이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재림 때에 죽음에서 부활할 사람들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세상 역사의 종말에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할 사람들을 대표한다.